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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창암 이삼만 탄생 240주년 서예전을 보고

노상학

독자투고(43)
노상학 / 회사원,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

조선의 마지막 자락에서 붓 한 자루 벗을 삼아 유수(流水)처럼 살다간‘창암 이삼만 선생(1770-1847)탄생 240주년 기념 서예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다. 창암은그 당시 호남 서단을 대표하며 서울의 추사김정희, 평양의 눌인 조광진과 더불어 3대 명필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추사의 명성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어찌 보면 불운한 문객이었다. 그는 초서에 매우 능했으며, 특히 물 흐르듯 내리긋는 일명 창암체(流水體)의 필적은 소박함과 유려함을 동시에 겸비해 신필로까지 불려졌다.

필자는 동시대에 함께 호흡하지는 않았지만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은 200년 전의 문필가와 대면을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불음묘능지주취(不飮妙能知酒趣), 유재하지작시인(有才何只作詩人)>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술을 마시지 못해도 흥취의 묘한 기분을 아느니, 재주 있다고 어찌 다만 시인이 되랴!”즉, 글재주가 있다고 함부로 잔재주를 부려 시문을 써서는 안 된다는 창암의 가르침이 들리는 듯 했다. 이어서 눈길을 끈 작품이 송나라 정이가 지은 사물잠(四勿箴) 가운에 언잠에 관한 부분이었다. <인심지동(人心之動), 인언이선(因言以宜). 길흉영욕(吉凶榮辱), 유기소소(惟其所召)> 즉, “마음의 움직임은 말로 인하여 드러나고, 길흉과 영욕도 모두 말로 인하여 초래된다.”라는 뜻으로 우리가 평소 살아가면서 깨우치고 새겨야할 경구가아닌가 싶다. 창암의 서첩과 필묵을 한참동안 감상하고 옆으로 돌아서니 범상치 않은 글씨가 눈길을 잡는다. 유수체로 호기롭게 씌여진 <산광수색(山光水色)>으로 이번 전시의 표지를 장식한 작품이라 눈에 익었다. 바로 옆에 창암이 추구했던 서예의 경지를 단적으로 표현한 <일운무적 득필천연(逸韻無跡 得筆天然)>의 글이 담담하게 필자를 맞이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빼어난 운치는 그 흔적이 없고, 빼어난 필법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라는 뜻으로 이 글귀에서 언급한 『득필천연론』은 창암이 말년에 정립한 서예이론의 종착점이자 농익은 근본철학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사실, 창암의 유수체에 대해 조선 고유의 서예미를 구현했다는 극찬과 한낱 시골 개울의 흐르는 물과 같이 미력하다는 혹평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었던 100여 점의 미공개 걸작과 문제작 등이 그 동안 구전과 신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창암의 실체와 서격(書格)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고, 혹독한 자기수련으로 조선 서체의 고유색을 풀어낸 창암을 재평가 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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